Korean Version of Feb.1 Entry
고이수현군 5주기 추모기념식
이수현군 사망 5주년 기념식과 촬영시작을 알리는 파티.
오래간만에 브로그를 합니다.
25 일에 주연배우가 한국으로부터 일본에 도착했습니다. 아카사카 프린스호텔에서 오래간만에 만났습니다. 모두 시간을 내서 이 이벤트에 참석했습니다. 만난지 10일 정도 밖에 안되었는데 더 오래된 것 같았고, 다시 만나게 되어서 좋았습니다. 한국회원들은 모두 미소를 지었고 일본방문을 기대하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다음 날인 1월 26일에 이수현군의 사망 5주년 기념식이 오후 2시부터 열렸습니다. 주중이어서 참석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봐 걱정했었는데, 괜한 걱정을 했었습니다. 룸은 다 찼고 좌석이 부족하기까지 했습니다.
룸앞에서는 한국에서 만들은 영상비데오가 상영되는 스크린이 있었고, 이수현 아시아장학회와 아카몬카이 국제언어아카데미가 사회를 보고 진행을 하는 가운데 모두가 1분간의 묵념을 함으로써 기념식은 엄숙한 분위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모 리모토 전총리가 회장을 맡는 초당파 의원 360명이 소속되어 있는 「일한의원연맹」에서 오신, 응원단장을 해 주시겠다고 하는 젊은 니시무라 의원, 민단이나 재일의 경제계의 분들, 재일 한국 대사관의 참사관분들등, 한사람 한사람이, 진심에서 우러난 메세지를 주셨고, 5년전, 당시의 외무 대신이었던 타나카 마키코 의원도 살그머니 한쪽 구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헌화가 계속되었습니다..
이 영화의 관계자석에도, 여러 멤버가 모였고, 한국까지 와 준 열성적인 협찬 기업의 대표들이 있었고. 일반인도 다수 참가했습니다.
배 용준씨를 지지하는 팬클럽에서는 일본 전역에서 20명의 회원이 이 행사에 모였습니다. 매년 이 행사에 참가 할 뿐아니라, 기부금을 모음으로서, 이수현장학회를 계속해서 지지하고 확장해 나가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그들 대부분도 어머니이기 때문에 이수현씨의 어머니에 대해 강한 동정심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수현군이 남기고간 뜻 뿐 아니라 할 수 있는 한 부모님들의 바램도 지지하기 위해서 모였다고 말했습니다.
제 친구 몇몇도 참석했습니다. 프로듀서로서 우리를 돕기 위해서 프로젝트에 참가한 N-산이 있는데, 그는 저의 첫 작품인 “양의 비가”를 감독할 기회를 준 사람입니다. 그는 정말 활동적인 사람이고 제 두번째 영화인 “꿈을 뒤쫒아”도 만들었습니다.
영상대학원설립을 목표로 제가 2년여 동안 관계하고 있는 그룹, “WAO!”의 지도자도 역시 참석했고, 이 프로젝트에 새로운 관계를 가질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배우를 캐스팅하는데 어려움에 처했을 때 우리를 구원해 주었던 제 옛친구인 I-산도 참석했습니다. 드라마 “영원한 어린이”에서 정신과 치료에 대한 어드바이스를 원했을 때부터 알았으니 벌써 몇년입니까? 시나리오작가인 Ms. 마사코 이마이도 참석했습니다. 가마모리에 있었던 “양키의 꿈”의 영상회에서 알게 되었던 O-산도 나고야에서 왔습니다. “Yume-net”회원들은 꽃을 보내왔고 아키타에 있는 JIN-산은 케익을 보내왔습니다. 여러분으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이 기회를 빌어서 다시한번 여러분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너무 참석자들이 많아서 꽃이 거의 모자랄 뻔 했습니다.
다 음은 이수현군 사진앞에서 이 영화의 촬영을 시작하는 보고회를 가졌습니다. 첫번째로 프로듀서인 M-산께서 스피치를 했고, 다음은 저, 이태성씨 그리고 그의 가족,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현의 친구역할을 맡은 2명의 소년들이 스피치를 했습니다. 메모없이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솔직히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안나지만, 나중에 스피치가 괜찮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비디오를 보게 되면 부끄럽겠지만, 할 수 없지요.
이태성씨는 정말로 굉장했습니다. 그는 일본어로 자기 소개를 했는데, 발음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가 얘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영화에서 일본어로 말할 때 아무 문제가 없으리라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제 스피치에서 기억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이 블록에 올린 사진은 영화 ‘이미지 포스터”인데, 흥미있는 에피소드가 숨어 있습니다.
한국에서 촬영이 시작되고 다음날, 프로듀서가 편지를 하나 받았습니다. 그 편지는 이수현군의 최후의 순간을 목격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으로부터 온 편지였습니다.
사 실, 수현군이 플랫홈에서 뛰어내린 순간과 기차가 들어올 때 까지 약7초간의 간격이 있었습니다. 7초는 만약 원한다면 피할 수가 있는 충분한 시간이었는데, 하물며 스포츠로 단련한 그와 같은 사람이라면 가능한 얘기였습니다. 도와줄려고 했던 Mr. 세키네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 그 시간 동안에 무엇을 하려고 했을까?
아무리 노력해도 대답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상상은 할 수 있었지만, 추측을 확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찾던 것이 바로 우리가 받은 편지에 쓰여있었습니다.
답은 포스터에 있는 모습입니다. 이수현군은 전철을 향해 양팔을 펼치고 직면하듯이, 그의 최후의 순간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 메세지를 영화로 전달할 수 있을까요?
지금은 이 점에 관해서 깊게 계속해서 생각하고 싶습니다.
(English to Korean translation by sue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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